두려워할 건 없다
우리 앞에 다시 뉴펀들랜드가 자리한다. 이번엔 우리 오른쪽에 있다. 우리 가 네 종류의 바닷물 가운데 두 번째의 것을 배우기에 좋은 기회이다. 바로 우리가 함께 타고 가는 바닷물로 해저수(Bodenwasser)라 불리며 그 이름 그 대로 북대서양의 미끄러운 심해 위를 흐른다.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해 저수가 된 표층수이다. 해류의 체계 안에서 보면 모든 물덩어 리들마다 시간 이 지나면서 취하게 되는 위치는 어떤 것이든 다 취할 수가 있다. 우리는 또 다시 래브라도해류와 만난다. 그 바닷물이 이번에는 우리와 같은 길로 들어 서기 때문에 우리의 길동무가 된 것이다.
그것은 우리 주변에서 섞이게 되는 데, 우리의 해저수보다는 덜 차갑고 염분도 덜하므로 온갖 지류들로 분리되 면서 더 높은 곳을 떠돌며 일종의 중간층 같은 것을 이룬다. 이제 우리는 심 해수(Tiefenwasser)—이것이 세 번째 종류의 해류다一속에서 남쪽을 향하여 가는 중이다. 우리보다 저 높은 곳에서 지브롤터해협이 지나가게 되자 우리 를 맞이하는 것은 바로 따뜻하면서도 극도로 염분이 많은 바닷물의 소용돌 이다. 그것은 지중해에서 생겨나서 스페인과 모로코 사이의 해협을 벗어나 와 비행접시와도 같이 둥둥 떠다닌다. 그것은 우리를 따라오다가 온갖 바닷물과 뒤섞이게 된다. 그래도 우리의 여행은 계속되고 수심도 여전히 상당히 깊은 상태여서, 우리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을 즐길 수 있다. 그것은 바로 화산폭발이다.
우리는 대서양중앙해령에 다다랐다. 총연장 6만 킬로미터로 세계를 싸안 올 정도인 해저산맥의 일부이다. 이 해령은 높이가 3킬로미터까지 되며 그 위에 올라선 물기둥 높이도 그만큼 된다. 여기서는 지각이 벌어져 녹은 암석 이 길을 트며 흐르고 해 령을 따라 갈라져 있는 끝없는 계곡으로 쏟아져 들어 간다. 해양저는 1 년에 5센티미터씩 서로 떨어지며 대륙들을 향해 표류해가 는 여행을 한다.
이곳은 아주 깜깜한 곳이지만 당신은 용암을 볼 수 있다. 그렇다고 두려워할 건 없다. 심해에서의 화산폭발은 육지에서보다는 훨씬 우 아한 모습으로 일어나니까 말이다. 엄청난 압력을 받는데다 수온도 얼음처 럼 차가운 가운데 붉은 빛을 내는 진득한 액상의 물질이 연못처 럼 고이는가 하면 검은 데를 뚫고 꼬불거 리며 흘러간다. 현무암 지각은 금세 용암으로 뒤 덮이게 된다. 잠시 뒤가 되면 이렇듯 이글거리며 작열하는 모습은 수백만의 미세한 틈새 모양으로 변하고, 이것도 끝내는 닫혀버 리고 만다.
당신은 잠깐 음악을 꺼보라. 저 소리가 들리는가? 해양저가 새로 생겨나는 탄생의 진통으로 콰르릉거리며 부딪치는 둔중한 음향과 부글거리며 끓는 소 리가. 화산 주변에는 갖은 엄청난 생명들이 깃들게 될 것이다. 은밀하고도 수 수께끼처럼. 하지만 우리는 높이 떠오르며 해령과 그와 이웃해 있는 황무지 를 떠나서 점점 윙 소리가 날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간다. 적도가 뒤로 처지고 우리는 아프리카도 지나왔지만 편안하고 조용한 여행이었다. 그런데 갑자기 격심한 난류(亂流)가 우리를 요동치게 하자, 우리의 잠수정이 달아나 며 높직이 떠오르는 바람에 서로 머리를 찧지나 않으려면 우린 단단히 붙들 고 있어야 한다.
주의! 당신은 선회하는 흐름에 다가갑니다. 적시에 접어들면서 극지순환류를 따라가십시오.
때로 사람들은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뭔 생각을 다 하는 거냐고 묻기도 할 것이다. 적시에 접어들라니! 하지만 그것은 러시아워에 에트왈 광장(Place de rEtoile)을 건널 때면 보행자에게 걸음을 침착하게 걸으라는 말도 곧잘 해 주는 것과 똑같다. 케이프혼 건너편에서 수면으로 올라서자 우리는 이내 격 노한 폭풍 속으로 내던져진다. 미친 듯 날뛰는 청회색의 파도 물마루 위로 거 품들이 유령처 럼 서로 할퀴듯 휘몰아치고, 그 한가운데 우리가 있다. 우리는 에드거 앨런 포(Edgar Allan Poe)의 유일한 장편소설,”에 나오는 불운한 주 인공 아서 고든 핌의 세계에 다가간다. 그가 남극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의 마지막 인상은 유령 같은 거대한 풍모를 지닌 사람의 인상 그것이었다. 마치 침대시트라도 뒤집어쓴 것 같은 모습으로 지구상에 살았던 그 누구보다도 훤칠하게 컸던 한 남자다. 그리고 그 남자의 피부색은 티 하나 없는 순백의 눈처럼 하얀색이었다.
부르르르르.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선회하는 흐름인 남극 극지 순환류(Zirkumpokirstrom) 속으로 쓸려 들어간다. 그것은 육지에 부딪치거나 하는 일도 없이 흰색의 대륙을 싸고 그 둘레를 끊임없이 순환한다. 그것은 결코 가만히 멈춰 서는 법이 없고, 그 무엇도 그것을 정지시키거나 속도를 늦 추지 못한다. 그것이 빨아들이는 작용은 엄청나서 모든 바다가 이 거대한 회 전목마 속으로 섞여들고 또 거기서 다시 생겨나게도 된다. 여기에 이르기까 지 래브라도해류의 일부라거나 아니면 지중해의 일부 와류였거나 설사 그 정체가 무엇이었든 간에 모두 이 남극의 물레방아 속에서 합쳐지며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혼합된다. 남은 것은 이름이 없는 바닷물뿐이다. 다시 토해져 새 물길로 이끌려가게 되기까지는 이름이 없는 것이다.
네 번째 해류의 범주인 중층수(Zwischenwasser) 속에서 우리는 잠시 함께 떠가면서 잠수정 난방이 멎어버리지 않기만을 바란다. 자비로운 하늘도 싸 늘하기만 하다! 우리가 이제 적도로 회귀할 바닷물의 일부와 함께 금방 다시 대서양으로 떠밀려 돌아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. 그러나 우리가 계속 회 전목마 안에서 굴러다니는 동안 새로운 수괴가 풀려나가 인도양 쪽으로 흐 르는 통에, 침착하게 기다리던 우리는 마침내 거기에 붙들리게 된다. 태평양 이다! 전원 탈출이다! 그리고 우리는 떠난다.
수심을 800미터로 유지하십시오. 4천 킬로미터를 타고 간 다음 재빨리 좌회전을 하십시오. 남아메리카의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적도를 향해 4천 킬로미터를 간다. 서 서히 다시 더워지는 것이 느껴지긴 하지만 우리가 급격한 좌회전에 이어 서 쪽으로 이동하게 될 때가 되어서야 우린 마지막 남았던 한기를 사지에서 털 어내 버 린다. 해류는 우리를 부드럽게 수면으로 떠오르게 만든다. 드디어 다 시금 햇빛을 보는 것이다! 뜨겁고 햇볕 쨍쨍한 날씨가 열대의 강우지 역들에 내리쬐고 있다. 여기는 무역풍(Passat)이 분다.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남양 의 바다다! 어이, 저 앞쪽은 바로 인도네시아 아닌가?
500킬로미터 뒤에는 비스듬히 우측으로 유지하다가 보르네오 섬과 술라 웨시 섬 사이로… 젠장, 비스듬히 왼쪽으로 롬복해협을 통과해서 .. 아니, 잠깐. 대체 이제 어디로가란 말이야? 티모르 섬을 지나고… 허, 이거… 아니, 방향을 틀어 마카사르해협으로 가 는 게 낫겠고… 그 담으론… 엥,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? 두말할 것도 없이 인도네시아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크고 작은 섬들과 해 협 , 파도가 몰아치거나 얕은 곳들이 뒤섞 여 있는 나라여서 해류로는 별로 많 이 알려진 것이 없다. 여기서 우리의 편서풍류CWestdrift)는 소용돌이로 변하 고 해류들은 각자 지류가 되어 제 갈 길로 찾아간다. 모두가 인도양으로 가길 원하겠지만 그리로 가는 대문 같은 것이 나 있는 것은 아니다. 우리는 간신히 보르네오 섬과 술라웨시 섬 사이를 빠져나와 인도양을 가로지르며 아프리카 로 향한다. 따뜻한 아라비아 해에서는 염분이 유입되며 증가한다. 우리를 둘 러싼 바닷물이 점점 더 무거워지지만 우리는 태평양의 열기로 꽉 차 있는 덕 분에 해수면에 머물면서 모잠비크의 해안을 따라 속도를 올리고, 물살을 헤 치며 회망봉의 굽은 길목으로 접어든다一하지만 기회를 한 번 놓쳤다.
왜 계속 가지 못하는 거지? 아주 간단하다. 이곳은 남극의 극지순환류에 가깝게 인접한 곳이라 교차하는 흐름들이 본격적으로 부서지며 내는 소리가 들려오고, 반대로 흐르는 해류들도 맞부딪치게 되는 곳이다. 당신도 물론 알 고 있다시피 이런 상황이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다. 이번엔 우리가 변 종파를 만나 허공으로 높이 내동댕이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. 한동안 애를 쓰고 나서야 우리는 희망봉을 돌아서며 우리를 이곳으로까지 데려다준 해류와 다시 갈라서 게 된다. 엄청난 소란이 지나자 우리는 남대서 양 위로 떨어져 새로운 열기를 빨아들이며 적도해류를 타고 서쪽으로 당도 하게 된다. 지금은 빠르게 앞으로 나가고 있다. 우리는 소용돌이를 일으키 며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를 지나치고, 그 다음으로는….
카리브 해의 섬들입니다. 목적지에 당도했습니다.